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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한강 소설을 읽고 싶다…시각장애인과 오디오북 사용해 보니 [인기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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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한 시민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책을 구매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우리 사회에 독서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지난 10월 10일부터 일주일간 교보문고 등 온오프라인 대형서점 매출은 전월 동기(9월 10∼16일) 대비 44% 증가했고, 발표 엿새 뒤 한강의 책 판매 부수는 100만을 넘겼습니다. 전국 공공도서관은 너나 할 거 없이 노벨상 수상을 기념하는 독서토론과 북콘서트 등 문화행사를 열었으며, MZ세대를 중심으로 퍼져갔던 ‘텍스트힙(Text Hip:책과 독서를 통해 자신의 멋짐을 드러내려는 트렌드)’은 유행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책을 찾는 지금의 현상은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독서의 귀환’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 역시 독서 열풍의 구성원 중 하나입니다. 사실 그들의 독서 욕구는 ‘한강 신드롬’ 이전부터 꾸준했습니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의 '2022 장애인 독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은 장애 유형별 중 하루 평균 독서 시간과 매일 책을 읽는 비율이 가장 많았고, 비장애인과 독서율 격차 또한 근 5년간 점점 좁혀져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점은 전자책과 오디오북 이용률입니다. 2022년 전체 장애인의 전자책·오디오북 이용률은 2020년 대비 4.7%p 증가(5.7%→10.4%)했는데, 같은 기간 시각장애인의 이용률은 약 15%p 급증(8.3%→23.2%)했습니다. 청각장애(3.3%→5.1%)·발달장애(12.8%→12.4%)·지체장애(4.6%→9.3%)와 비교해도 압도적인 수치입니다.


시각장애인이 전자책·오디오북을 많이 찾는 이유는 높은 접근성에 있습니다. 점자책은 기존 책보다 분량이 배로 커져 다루기 어렵고, 만드는 시간도 몇 개월씩 걸립니다. 게다가 시각장애인들의 점자 문맹률은 90%에 달해 책이 마련돼 있어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그렇다고 시각 보조기구가 있는 장애인도서관을 찾아가자니 집에서 멀뿐더러 찾아가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반면 전자책과 오디오북은 보관과 휴대가 편리하며,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장애인 4명 중 3명이 스마트폰을 통해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더불어 이전부터 꾸준히 성장해 온 오디오북 서비스 시장도 요인으로 꼽힙니다. 국내 오디오북 시장 규모는 2019년 171억 원, 2020년 약 300억 원 수준에서 올해 1,08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모든 작품을 전문 성우가 완독해 주는 국내 최초 구독형 오디오북 서비스 ‘윌라’와 18만 권의 방대한 전자책 수를 바탕으로 업계 최초 AI 음성을 활용한 오디오북을 내놓으며 후발주자로 뛰어든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의 넷플릭스라 불리며 한국에 진출한 세계 최대 오디오북 플랫폼 ‘스토리텔’ 등 국내외 기업들의 활발한 투자가 오디오북 시장의 규모를 키우고 있습니다.

높은 접근성을 가지고 나날이 성장 중인 모바일 오디오북 서비스는 시각장애인의 독서권을 보장하는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양질의 발전을 이뤄온 오디오북이지만, 여전히 시각장애인이 넘어야 할 문턱이 여럿 존재합니다. 기자가 시각장애인의 입장이 되어 오디오북 앱으로 한강 작가 작품을 찾아보며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 직접 알아봤습니다.

먼저 앞서 언급한 대표 오디오북 앱 3곳(윌라·밀리의 서재·스토리텔)에서 한강 작품을 찾아봤습니다. 한 권도 찾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한강 작가의 책들을 모두 서비스하지 않았습니다. 국내 최다·최고를 앞세우며 홍보했던 오디오북 앱들에선 허무하게도 노벨문학상 작품의 표지조차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은 실제 시각장애인이 겪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원하는 도서가 마련되어 있지 않거나, 전자책을 구매했음에도 오디오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아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합니다. 중증 시각장애인 A씨(39세·남)도 그러했습니다. 그는 “몇 달 전 편지를 잘 쓰고 싶어서 카카오 페이지에서 관련 도서를 구매했다. 구매까지는 원활히 됐는데 막상 책을 열었더니 TTS(텍스트 음성 변환 기술)를 제공하지 않았다. (TTS가) 당연히 있을 줄 알았다”라고 했습니다. 5만 원어치 도서를 구매한 그는 지금도 책을 못 읽고 있습니다.

기자는 한강 작가의 소설을 읽기 위해 다시 여정에 나섰습니다. 그러다 ‘책 읽어주는 도서관’ 앱을 소개받았습니다. 책 읽어주는 도서관은 세계 최초 유비쿼터스 시각장애인 도서관으로, LG그룹에서 각 분야의 유비쿼터스 기술을 갖고 있는 4개사 (LG전자, LG유플러스, LGCNS, LG이노텍)와 LG상남도서관이 함께 제공하는 도서관 서비스 입니다. 장애복지카드 인증 절차를 거쳐 회원가입을 마치면 모든 오디오북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채식주의자>, <흰>, <소년이 온다> 등 총 8권의 한강 작품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원하는 책을 골라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잠시, 기자는 한 권도 완독하지 못했습니다. 감정 하나 없는 TTS 소리는 차갑고 딱딱했습니다. 어색한 TTS 음성으로 작품 속 주인공의 감정과 대화 내용을 파악하려 하니 온 정신을 집중해야만 했고, 몸에는 힘이 들어갔습니다. 이따금 의문형으로 끝나는 문장임에도 끝말을 올리지 않고 곧바로 넘어가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웠습니다.

시각장애인 남자친구를 둔 B씨(33세·여)도 같은 고충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는 “예를 들어 '주인공이 길을 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졌다' 라는 문장이 있다면, 성우 낭독 버전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저 띄어쓰기대로 읽지만, 어떤 TTS들은 '주∨인공이 길을 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졌다' 이런 식으로 이상한 곳에서 띄어쓰기할 때가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A씨 역시 “국립장애인도서관 어플 ‘드림’이나 ‘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 ‘룩스데이지’ 등 복지관 앱은 음성엔진이 제한적이다. 유료라도 좋으니 음성엔진 선택권이 다양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비장애인 사용자 중심의 복잡한 앱 화면 구성과 환경설정도 걸림돌입니다. 기자가 눈을 가린 채 대표 오디오북 앱 3곳을 모두 이용해 본 결과, 도서 검색부터 오디오북 재생 조작까지 주변의 도움 없이는 혼자 이용하기 매우 불편했습니다. 평소 시중 오디오북 앱을 사용하는 중증 시각장애인 C씨(39세·남)는 “메뉴를 한 화면에 보기 쉽게 정리되었으면 한다”라고 했고, 같은 중증인 D씨(24세·여)도 “디자인을 어느 정도 신경 써주면 좋겠다. 저는 오히려 단색은 제대로 구분을 못 해서 색깔과 크기 조정이 있었으면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책 읽어주는 도서관 앱의 경우 시중의 앱들과 다르게 전반적으로 시각장애인을 고려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넓고 큰 버튼과 단순한 조작법,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글자 크기와 색깔 설정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어르신들을 위해 만들어진 스마트폰 설정 속 ‘쉬운 사용 모드’처럼 사용자의 편의에 따라 앱 내에서 화면 모드를 변경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사항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오디오북 서비스를 제공하기 이전부터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접근성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중증 시각장애인 E씨(39세·남)는 “현재 장애인단체 등에서 봉사자들이 시각장애인용 데이지도서(인쇄물 접근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위한 전자책)를 제작하고 있지만, 사실 책을 출간할 때부터 기본적으로 고려된다면 여러모로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만 보아도 기본적으로 오리지널 시리즈는 장애인 접근성을 처음부터 같이 만들어서 출시한다. 책을 만드는 것은 더욱 간단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시각장애인 전용, 장애인 전용이라는 게 사라지는 세상이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말했습니다. 

[MBN 김경태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dragonmoon20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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